제목: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본문: 전도서 4장 12절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1. 들어가는 말 – 가정은 하나님이 세우신 첫 공동체
사랑하는 신혼부부 여러분, 먼저 결혼을 축복드립니다. 두 사람이 한 가정을 이루어 살아간다는 것은 단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즐거움만이 아닙니다. 결혼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 속에 있는 영광스러운 계획이며, 하나님이 세우신 첫 번째 공동체입니다.
성경은 가정이 하나님 나라의 작은 모형이며,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반영한다고 말합니다(엡 5:31-32). 그런 면에서, 오늘 우리는 이 가정을 하나님 앞에 바치며 복을 구하는 심방 예배 자리에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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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본문 배경 – ‘세 겹 줄’의 의미
전도서 4장 12절은 흔히 결혼식에서도 많이 인용되는 말씀입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이 말씀은 인생의 동반자, 즉 혼자가 아닌 둘,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의 강력함을 보여줍니다.
한 겹 줄: 혼자 살아갈 때의 연약함.
두 겹 줄: 배우자와 함께할 때의 힘.
세 겹 줄: 부부 사이에 하나님이 함께할 때 생기는 놀라운 능력.
신혼부부로서 이제 두 겹 줄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이 가정이 ‘세 겹 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중심에 계시는 결혼, 하나님과 동행하는 가정이 되어야 비바람 속에서도 끊어지지 않습니다.
3. 세 겹 줄의 신앙적 의미
1) 하나님이 함께하는 부부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7장에 보면, 집을 반석 위에 세운 사람은 비가 오고 창수가 나도 무너지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결혼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환경이 흔들려도, 감정이 식어도, 오해와 다툼이 있어도 하나님이 중심에 계시면 다시 붙들어 세워집니다.
기도의 줄, 말씀의 줄, 믿음의 줄이 부부 사이에 놓여 있으면, 그 어떤 유혹과 시험도 쉽게 끊어지지 않습니다.
2) 하나님이 중심이 되면 사랑이 식지 않습니다
사랑은 감정만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사랑은 헌신이며 결단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아가페)이 부부의 사랑을 감싸줄 때, 상대의 연약함도 용납할 수 있고, 끝까지 함께 걸을 수 있는 인내와 자비가 생깁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은 바로 그 하나님 사랑입니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사랑
이런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그러니 ‘세 겹 줄’ 가운데 중심은 하나님이셔야 합니다.
3) 하나님이 중심이면 사명 있는 가정이 됩니다
하나님은 부부에게 단지 행복만 주시기 위해 결혼하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가정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이 가정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이 가정을 통해 다음 세대가 믿음으로 자라며
이 가정을 통해 이웃과 세상을 섬기는 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 사명을 위해 하나님은 이 부부를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결혼은 시작이 아니라 사명의 출발점입니다.
4. 구체적인 적용 – 세 겹 줄 가정의 실천
1) 매일 함께 기도하십시오
기도는 영적인 끈입니다.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를 함께 기도하는 부부는 절대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짧게라도 함께 손을 잡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2) 말씀을 함께 나누십시오
한 주에 한 번이라도, 큐티 말씀을 나누고 느낀 점을 이야기하십시오. 부부의 영적 대화는 마음의 벽을 허물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 되게 합니다.
3) 공동 사명을 설정하십시오
부부가 함께할 하나님의 사명을 정하십시오. 예를 들어:
주일 봉사 함께 하기
새가족 정착 도우미
가정의 전도처 되기 등
부부의 방향이 같을 때, 갈등이 줄고 기쁨은 커집니다.
5. 마치는 말 – 가정은 작은 교회입니다
사랑하는 신혼부부 여러분, 가정은 가장 작은 교회입니다. 남편은 제사장과 같은 존재로, 아내는 돕는 배필로서 서로의 구원을 위한 동역자입니다.
오늘 이 심방예배를 통해 하나님이 이 가정을 향한 영적인 기초를 다시 놓아주십니다. 그리고 축복하십니다. 앞으로 많은 일이 있겠지만, ‘세 겹 줄’의 믿음으로 함께 걸어간다면,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기도문
“하나님 아버지, 이 신혼부부를 축복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두 사람이 이제 한 가정을 이루어 살아가오니, 그들의 삶 가운데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주시고, 언제나 주님의 말씀과 사랑으로 붙들어 주옵소서.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세 겹 줄로 단단히 묶인 가정 되게 하시며, 이 가정을 통해 주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이웃이 복을 받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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