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 제목: "사귐과 기쁨의 복음 – 우리가 전해야 할 생명의 말씀" 1. 설교 본문: 요한일서 1:1-4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1절)... 우리가 이것을 쓰는 것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4절)" 2. 서론: 복음은 체험이다 요한일서는 단순한 이론적 선언이 아닙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들은 바요, 본 바요, 만진 바라"고 증언합니다. 복음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진 실체이며,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십니다. 이 생명의 말씀은 단지 전달되는 정보가 아니라, 삶으로 체험되어야 하는 생명 그 자체입니다. 3. 본론: 사귐과 기쁨의 핵심 진리 1) 복음은 ‘들림’이 아니라 ‘사귐’이다 (3절) 요한은 단지 예수님의 이야기를 전하지 않습니다. 그는 "너희도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라"고 말합니다. 복음의 목적은 ‘사귐’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성도 간의 교제가 핵심입니다. 신앙생활은 고립된 수행이 아니라, 사귐 속에서 자라나는 삶입니다. 2) 복음은 ‘정보’가 아니라 ‘생명’이다 (1-2절) 요한은 그리스도를 "생명의 말씀", "영원한 생명"이라 부릅니다. 이 생명은 영적인 개념이 아니라, 인격이신 예수님 그 자체입니다. 복음은 그저 천국 가는 표가 아니라, 지금 이 땅에서 누리는 예수 생명입니다. 3) 복음은 ‘기쁨 없는 의무’가 아니라 ‘충만한 기쁨’이다 (4절) 요한은 이 편지를 쓰는 이유가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고 밝힙니다. 복음이 기쁨을 빼앗는 종교가 되었다면, 우리는 복음의 본질을 잃은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의 사귐은 기쁨을 회복하게 합니다. 4. 결론: 당신은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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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안에 세운 가정, 흔들리지 않습니다” 📖 본문 시편 127:1-5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1. 설교 서론 – 흔들리는 시대, 흔들리는 가정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5월 가정의 달을 보내며 우리 모두는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금 되새기게 됩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부부 간의 갈등, 부모와 자녀 간의 불통, 경제적 위기, 정신적 소외... 세상은 가정을 흔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선언합니다. "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 이 말은 단지 집짓기의 수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이라는 ‘영적 공동체’를 하나님 없이 세우려는 모든 시도가 얼마나 헛된지를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2. 본문 해석 – “세운다”는 말의 신학적 의미 히브리어 ‘ 바나 ’(בָּנָה)는 단순히 건축한다는 의미를 넘어서, 구조화하고, 세우고, 성장시키며, 보호한다 는 풍부한 의미를 지닙니다. 시편 127편의 저자 솔로몬은 ‘성전 건축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강조했던 왕입니다. 그는 자신의 권력이나 능력으로는 결코 하나님 나라와 백성의 삶이 유지되지 않음을 절절히 고백합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속적인 교육, 물질적 안정, 좋은 환경 이 가정을 ‘세우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모든 수고는 허사가 되고 맙니다. 📢3. 현실적 진단 – 왜 우리 가정은 흔들리는가? 오늘날 많은 가정이 외적으로는 번듯합니다. 좋은 직장, 명문 학교, 고급 아파트, 해외 여행... 하지만 영적으로는 허물어져 가고 있습니다. 가족 간 대화가 없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성적과 성공의 도구로만 봅니다. 자녀는 부모를 통제자로 인식합니다. ...
요1:1-4 말씀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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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능력 – 생명의 말씀과 교제의 회복 요일1:1-4을 중심으로 📢1. 들어가는 말 –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 요한일서 1장 1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구절은 단순한 소개 이상의 것을 말해줍니다. 그것은 **말씀(Logos)**의 실제성과 생명(Zoe)의 실재성을 동시에 선포하고 있습니다. “태초부터 있는 말씀”이라는 표현은 요한복음 1장 1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는 구절과 맥을 같이하며, 예수 그리스도가 단순한 인간 이상의 존재, 즉 하나님의 말씀 자체임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말씀이 듣고, 보고, 자세히 보고, 손으로 만진 바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성육신의 신비를 증언하는 표현이며,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말씀은 개념이 아니라, 인격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자, 우리 가운데 거하셨던 실재적 존재이십니다. 요한은 그것을 자신의 눈으로 목격하고 손으로 만진 증인으로서 고백하는 것입니다. 📢 2. 말씀이신 그리스도 – 신학적 정체성 ‘말씀’이라는 헬라어 단어 **‘로고스(Logos)’**는 헬라 철학과 유대 신학에서 각각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헬라 사상에서는 우주를 질서 있게 유지하는 이성적 원리로, 유대 사상에서는 하나님의 창조적이고 계시적인 능력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요한은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창조 이전부터 존재했던 말씀이며,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인격화된 존재임을 선포합니다. 그는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이셨으며,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요 1:14). 따라서 요한일서 1:1-4은 단지 그리스도의 과거 행적을 회상하는 글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오늘도 우리 가운데 생명의 말씀으로 임재하신다는 선언입니다. ...
말씀의 영감, 말씀의 능력 딤후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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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영감, 말씀의 능력 딤후 3:16 본문: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 3:16) 📢 1. 들어가는 말 – 말씀, 그냥 글이 아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매주 예배를 드리며 읽고 듣고 묵상하는 이 '성경 말씀'은 단순한 고대 문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곧 하나님의 숨결, 하나님의 뜻이 담긴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디모데후서 3:16절을 중심으로 왜 하나님의 말씀이 ‘영감’이며, 왜 그렇게 중요한가, 그리고 그 말씀이 우리의 삶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가를 나누고자 합니다. 📢 2. 왜 말씀은 ‘영감’인가 – 하나님의 숨결에서 온 진리 본문에서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란 표현은 헬라어로 **"θεόπνευστος"(theopneustos)**입니다. 직역하면 "하나님이 숨을 불어넣으셨다"는 뜻입니다. 즉, 성경은 사람들이 그냥 쓴 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사람들을 감동시키셔서 쓰게 하신 말씀입니다. 베드로후서 1:21도 이렇게 말합니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라.” 이 말씀이 주는 교훈은 명확합니다. 우리가 읽는 성경은 인간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 하나님이 친히 영감을 주셔서 기록하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렇기에 이 말씀은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있으며, 시대와 문화, 상황을 초월한 진리입니다. 📢 3. 왜 말씀이 중요한가 – 네 가지 유익 디모데후서 3:16은 성경이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주는지를 네 가지로 말합니다. 1) 교훈 – 무엇이 진리인지 가르칩니다. : 성경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합니다. 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 진정한 삶...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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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본문: 전도서 4장 12절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1. 들어가는 말 – 가정은 하나님이 세우신 첫 공동체 사랑하는 신혼부부 여러분, 먼저 결혼을 축복드립니다. 두 사람이 한 가정을 이루어 살아간다는 것은 단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즐거움만이 아닙니다. 결혼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 속에 있는 영광스러운 계획이며, 하나님이 세우신 첫 번째 공동체입니다. 성경은 가정이 하나님 나라의 작은 모형이며,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반영한다고 말합니다(엡 5:31-32). 그런 면에서, 오늘 우리는 이 가정을 하나님 앞에 바치며 복을 구하는 심방 예배 자리에 서 있습니다. --- 2. 본문 배경 – ‘세 겹 줄’의 의미 전도서 4장 12절은 흔히 결혼식에서도 많이 인용되는 말씀입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이 말씀은 인생의 동반자, 즉 혼자가 아닌 둘,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의 강력함을 보여줍니다. 한 겹 줄: 혼자 살아갈 때의 연약함. 두 겹 줄: 배우자와 함께할 때의 힘. 세 겹 줄: 부부 사이에 하나님이 함께할 때 생기는 놀라운 능력. 신혼부부로서 이제 두 겹 줄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이 가정이 ‘세 겹 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중심에 계시는 결혼, 하나님과 동행하는 가정이 되어야 비바람 속에서도 끊어지지 않습니다. 3. 세 겹 줄의 신앙적 의미 1) 하나님이 함께하는 부부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7장에 보면, 집을 반석 위에 세운 사람은 비가 오고 창수가 나도 무너지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결혼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환경이 흔들려도, 감정이 식어도, 오해와 다툼이 있어도 하나님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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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매일 기쁘게 – 주님으로 인해 오늘도 기뻐하는 삶 세상에는 수많은 ‘기쁨’이 있습니다. 아이의 웃음, 따뜻한 커피 한 잔, 좋아하는 사람과의 만남, 좋은 결과를 받았을 때의 뿌듯함…. 그러나 그런 기쁨들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집니다. 마치 꽃이 피었다가 시드는 것처럼, 잠시 반짝이다가 어느 순간 흔적 없이 사라져버리는 일시적인 기쁨입니다. 하지만 제 삶에는 한 가지 결코 사라지지 않는 기쁨 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 안에 있는 기쁨 입니다. 저는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매일 기쁘게 살아갑니다. 주님 때문에요. 🌿1. 주님을 만난 이후, 기쁨의 결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조건이 있어야 기뻤습니다. 원하는 일이 성사되어야, 누군가 인정해줘야, 나 자신이 만족할 때만 웃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조건은 항상 흔들렸습니다. 사람이 변하고, 상황이 변하고, 마음이 변하니 기쁨도 늘 불안정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난 후, 삶의 기쁨의 중심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더 이상 내 기쁨은 내 성과나 환경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기쁨의 근원은 오직 **"내 안에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변하지 않으시는 분 이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그분(히 13:8)은 내가 넘어질 때도, 실망할 때도, 실패할 때도 여전히 나를 사랑하시고, 함께 걸어가주시는 분 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요! 이 진리를 마음 깊이 깨달았을 때, 저는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을 누리기 시작했습니다. ☀️2. 하루의 시작, 주님 안에서의 기쁨 아침이 밝으면 저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 오늘도 주님 안에서 기쁘게 시작합니다.” 세상 뉴스는 우울하고, 해야 할 일은 산더미 같고, 몸은 피곤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주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오늘도 제 마음에 기쁨을 채워주세요.” 그리고 성경을 펴면, 말씀 한 줄이 마음 깊은 곳을 따뜻하게...
🌀 살아있다는 것과 존재한다는 것의 차이: 철학과 신학의 깊은 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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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있다는 것과 존재한다는 것의 차이: 철학과 신학의 깊은 물음 1. 서론: 우리가 묻지 않은 질문 “당신은 살아있습니까?” “당신은 존재합니까?” 이 두 질문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차원을 내포합니다.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며 ‘살아있다’는 사실을 너무도 당연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나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은 좀처럼 하지 않습니다. 이 글에서는 ‘살아있음(Life)’과 ‘존재(Being)’의 의미를 철학적·신학적 시각 으로 풀어보며, 인간 존재의 깊이를 되짚고자 합니다. 2. 살아있다는 것: 생물학적 생명에서 기능적 생존까지 2-1. 생리학적 정의 ‘살아있다’는 개념은 생명체로서 기본적인 조건, 즉 호흡, 순환, 대사, 반응성, 생식 등 생물학적 기능을 수행하는 상태 를 의미합니다. 심장이 뛰고, 뇌파가 활동하며, 세포가 에너지를 생성한다는 것은 의학적으로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기준이 됩니다. 2-2. 사회적 기능으로서의 삶 사회학에서는 살아있음을 더 확장하여 봅니다. 한 인간이 가족, 사회, 조직 안에서 관계를 맺고 역할을 수행하며 기능하는 상태 또한 살아있다고 정의됩니다. 즉, 단지 숨 쉬는 것을 넘어 의미 있는 작용을 하는 주체 로 볼 수 있습니다. 2-3. 그러나 삶의 공허함 하지만 여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기술적으로는 ‘살아있지만’, 실존적으로는 죽은 듯 살아가는 사람들 이 많습니다. 외적인 활동은 활발하나, 내면은 공허하고 방향을 잃은 상태.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단순한 생물학적 삶이 아닌, 더 깊은 차원의 '존재'로 눈을 돌리게 합니다. 3. 존재한다는 것: 철학적 탐구의 본질 3-1. 존재의 철학적 정의 ‘존재’는 철학의 가장 본질적인 주제입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파르메니데스(Parmenides)**는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문장을 남겼습니다. 존재는 변하지 않으며 근원적 실재 라는 것입니다. 이후 **하이데거...
💒 주 안에서 가정 내의 치유와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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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안에서 가정 내의 치유와 회복 🌱 들어가며 가정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후 처음으로 세우신 공동체입니다 . “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 ( 창 2:24) 가정은 사랑과 돌봄 , 신뢰와 보호 의 장소입니다 . 하지만 죄가 들어오면서부터 가정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 형제 간의 시기와 분노 ( 가인과 아벨 ), 부부 간의 갈등 ( 아담과 하와 ), 자녀 교육의 실패 ( 엘리 제사장 ) … 성경은 우리에게 “ 가정 내에 상처와 갈등이 있음 ” 을 숨기지 않습니다 .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 많은 가정이 외형적으로는 유지되지만 내면은 병들고 무너지고 있습니다 . 이 글을 통해 , 우리는 하나님 말씀 안에서 가정의 상처를 치유받고 , 회복의 길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 1.가정은 상처의 근원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사무엘하 13 장에는 다윗 왕의 자녀들 사이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이 나옵니다 . 암논은 이복누이 다말을 욕보이고 , 다말은 그 일로 깊은 상처 를 안고 삽니다 . 압살롬은 분노를 품고 암논을 죽이며 복수를 실행합니다 . 다윗은 이 사건을 알고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습니다 . 이처럼 말하지 못한 상처 , 처리되지 않은 분노 , 방관하는 침묵 은 결국 가정을 무너뜨립니다 . 가정 안에서 생긴 상처는 가족 간이기 때문에 더 깊고 , 더 아프며 , 쉽게 치유되지 않습니다 . ✔ “ 부모님의 차별적인 사랑 ” ✔ “ 배우자 간의 말 폭력 , 무관심 , 외도 ” ✔ “ 자녀의 불순종과 갈등 ” ✔ “ 형제 간의 상처 ” 이러한 문제들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리라 믿지만 , 말씀이 없고 , 중보가 없고 , 용 서가 없는 가정은 치유되지 않습니다 ....